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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사적 제122호 창덕궁 성정각 성정각은 희정당을 지나 후원 가는 길옆에 위치하였으며, 이 권역은 과거 동궁에 포함되는 영역이다. 성정각은 조선시대의 동궁(東宮)에 속한 전각이자 세자가 학문을 연마했던 곳이다. 본래 세자의 공부방이었으나 일제 강점기에는 이 일대가 왕가의 내의원으로 쓰였다. 성정각은 단층의 몸채에 중층의 날개채가 직각으로 붙은 모습이다. 성정(誠正)이라는 명칭은 공자의 유교 경전인 대학(大學)에 나오는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이라는 말에서 따왔으며 학문을 대하는 정성과 올바른 마음가짐을 뜻한다. 날개채의 남쪽에는 보춘정(報春亭)이라는 현판을 달았고 동쪽으로는 희우루(喜雨樓)라고 현판을 달았다. 관물헌은 성정각(誠正閣) 북쪽에 위치해있다. 갑신정변 때 김옥균 등의 개화당은 창덕궁 중에서도 가장 협소한 관물헌으로 고종을 .. 더보기
사적 제122호 창덕궁 옥류천(농산정, 태극정, 청의정) 농산정(籠山亭), 창덕궁 후원의 옥류천에 위치한 정자다. 정면 5칸, 측면 1칸 규모의 직사각형 모양이며 두벌장대의 낮은 기단 위에 돌초석을 놓고 사각기둥을 세워 납도리로 엮은 홑처마, 맞배지붕을 올렸다. 대청 2칸, 온돌방 2칸, 부엌 1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1636년(인조 14)에 세워졌으며 임금이 옥류천으로 거동했을 때 다과상을 올렸던 곳으로 보인다. 태극정(太極亭), 창덕궁 후원의 옥류천에 위치한 정자다. 굴다리를 엮은 정, 측면 1칸의 겹처마 사각 지붕 형식을 하고 있으며 내부에 마루를 깔고 퇴를 달아 평난간을 둘렀다. 천정은 우물천정이고, 지붕 꼭대기는 절병통을 얹어 마무리 하였다. 청의정(淸義亭), 창덕궁 후원의 옥류천에 위치한 정자다. 정, 측면 1칸으로 궁궐에서 유일하게 팔각의 초가 지.. 더보기
사적 제122호 창덕궁 궐내각사(홍문관, 내의원, 예문관) 홍문관(弘文館), 정면 5칸, 측면 3칸의 전각으로 본래 액호대로 옥당(玉堂)이라 불려야 하지만 궁중의 경서(經書) 사적(史籍)의 관리, 문한(文翰)의 처리 및 왕의 자문에 응하는 일을 맡아보던 홍문관의 관사였기에 홍문관으로도 불렸다. 내의원(內醫院), 정면 8칸, 측면 5칸의 규모를 한 전각으로 액호는 약방이지만 내의원이 있던 곳으로 궁중의 진료를 담당했다. 예문관(藝文館), 정면 7칸, 측면 5칸의 전각으로 제찬(制撰)과 사명(詞命 : 임금의 말이나 명령)에 관한 일을 관장하였던 예문관의 관사이지만 각종 의식을 행하고, 외국 사신을 접견하는 향실과도 합쳐진 형태를 하고 있다. 관련정보 MEDIA N | 문화재청 더보기
사적 제122호 창덕궁 궐내각사(규장각, 검서청, 봉모당) 규장각(奎章閣), 내각(內閣)이라고도 하며 정조(正祖)가 즉위한 1776년 궐내(闕內)에 설치, 역대 국왕의 시문, 친필(親筆)의 서화(書畵)·고명(顧命)·유교(遺敎)·선보(璿譜:王世譜)·보감(寶鑑) 등을 보관 관리하던 곳이다. 검서청(檢書廳), 규장각 오른쪽에 위치한 정면 5칸, 측면 2칸의 전각으로 규장각에 둔 관직인 검서관이 사관을 도와 서적의 교정과 서사일을 본 곳으로 역대 임금이 지은 글과 옥새를 보관하고 서적의 수집과 출판을 담당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규장각이 혁파되면서 빈 전각이 되었고, 이후 일제강점기 당시 다른 내각의 전각들과 함께 훼철되었다가 해방 후 1991년 복원 공사를 거쳐 2005년 일반에 개방되었다. 봉모당(奉謨堂), 규장각과 검서청 뒤쪽에 자리잡은 정면 5칸, 측면 3.. 더보기
사적 제112호 창덕궁 존덕정 창덕궁 후원의 애련정을 지나면 두 개의 연못과 정자가 있는 존덕정 권역이 나온다. 한반도를 연상하게 하는 반도지(관람지) 주변은 왕실 정원의 품격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존덕정 권역에는 관람정과 존덕정, 폄우사와 승재정이 위치하고 있다. 승재정은 정면 1칸, 측면 1칸에다 겹처마에 사못지붕을 한 작고 간결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각 칸마다 창호를 달았으며 살창이 독특한 문양을 가지고 있다. 정자의 마루에는 난간을 설치하였다. 승재정이 언제 건립되었는지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으나 조선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폄우사는 왕세자가 독서를 하며 심신을 수련하는 곳으로 ‘폄우’란 ‘어리석음을 고친다’라는 뜻이다. 폄우사 앞에는 왕세자가 팔자걸음을 연습하던 박석도 볼 수 있다. 존덕정은 이중지붕 구조의 .. 더보기
사적 제 122호 창덕궁 애련지와 의두합 창덕궁 애련지 권역은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와 연관된 공간으로 효명세자는 총명하고 인품이 높아 18세부터 순조를 대리하여 정치를 지휘하다가 22세로 요절한 왕자이다. 이곳에는 숙종 대에 건립한 애련정이 있었고, 효명세자는 1827년부터 여러 시설물을 세워 새로운 정원을 만들고 학원을 연마하며 정치를 구상했다. 그가 공부방으로 사용한 의두합과 그 옆에 운경거는 단청을 하지 않아 단출하고 소박하며, 독서와 사색을 위하여 궁궐 안에서 유일한 북향 건물로 되어 있다. 의두합은 수많은 책을 비치하고 독서를 하던 곳으로 정면 2칸 측면3칸의 팔작지붕 민도리집이다. 의두합 뒤에는 여러 단의 석축이 있고, 그 사이에 난 계단으로 주합루와 이어진다. 현재는 ‘기오헌’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으며 원래 이름이었던 의두합과 서로.. 더보기
보물 제1769호 창덕궁 주합루(사정기비각, 영화당, 천석정, 희우정, 서향각) 영화당은 왕과 신하들이 연회를 베풀거나 활을 쏘기도 한 정원이었는데, 정조 때부터 과거 시험장으로 이용하였다. 왕이 참석한 가운데 시관이 자리하여 시제를 내리고, 초시에 합격한 응시자들이 마지막 시험을 치른 곳이다. 사정기비각, 사정기비각은 창덕궁 후원의 연못 부용지(芙蓉池) 서쪽 물가에 있는 비각이다. 비각으로 보호되어 있는 비(碑)에는 부용지를 만들게 된 배경과 과정이 새겨져있다. 현재 위치는 옛날 술성각이 있던 자리로, 숙종 16년(1690)에 세워졌다. 서향각, 서향각은 주합루 아래층인 규장각의 부속건물로 어진과 어제, 어필을 옮겨와 서책을 볕에 쬐고 바람에 쐬는 일을 하던 곳이었다. 희우정, 희우정은 서향각 북쪽의 작은 정자이다. 건립할 당시에는 취향정(醉香亭)이라고 하는 초당이었으나 1690(.. 더보기
보물 제 1764호 창덕궁 낙선재 낙선재는 창덕궁과 창경궁 경계에 위차하고 있다. 맨 좌측에 낙선재가 크게 자리 잡고 그 우측으로 석복헌과 수강재가 연이어져 있으며, 이들 뒤편에는 화초·석물·꽃담 굴똑 등으로 가꾸어진 아름다운 화계와 그 위의 꽃담 너머로는 상량정·한정당·취운정이 위치해 있다. 원래 왕의 연침공간 조성을 목적으로 낙선재가 지어지고 이듬해에 빈의 처소를 위하여 석복헌을 짓고 수강재를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낙선재는 남행각에 나있는 정문인 장락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 건너에 정면 6칸, 측면 2칸 규모로 자리 잡고 그 좌측에 서행각이 남행각과 직교로 연접해 있다. 낙선재는 궁궐 내의 침전건축과는 달리 단청을 하지 않고 사대부주택형식으로 건축되었으나, 궁궐침전형식이 응용되면서 다른 곳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 더보기